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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medline[IHSAK’s Viewpoint] 팬데믹은 북한 의학연구를 얼마나 바꾸었을까?

관리자
2026-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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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HSAK’s Viewpoint] 팬데믹은 북한 의학연구를 얼마나 바꾸었을까?


URL: https://nkmedline.kr/app/service/trend/insight-detail?id=389



[ “IHSAK’s Viewpoint”는 고려대학교 한반도보건사회연구소(IHSAK, Institute for Health and Social Affairs on the Korean Peninsula, http://ihsak.korea.ac.kr)가 한반도의 최신 보건사회 현안을 과학적 근거와 정책적 시각에서 분석하는 전문 논평 시리즈입니다. ]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 의학연구의 우선순위를 새롭게 재편하였다. 많은 나라에서 감염병 대응, 공중보건, 백신 개발, 보건체계 회복력이 연구의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렇다면 외부 자료 접근이 극히 제한된 북한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났을까. 북한의 의학연구 역시 팬데믹을 계기로 감염병 중심으로 재편되었을까, 아니면 기존의 연구축을 그대로 유지했을까. 이 질문들은 북한 보건의료체계의 실제 역량과 한계를 읽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북한의 공식 통계와 정책자료는 외부에서 체계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북한을 연구할 때는 국가가 정기적으로 생산하는 텍스트와 제도적 산출물을 우회적으로 읽어낼 필요가 있다. 그 가운데 의학학술지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축적되는 자료이며, 어떤 질환과 치료, 어떤 기술과 문제의식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지를 통해 북한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실제로 다룰 수 있는지 짐작하게 해 준다. 


어떻게 들여다보았나

IHSAK 연구진은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북한의 주요 의학학술지 6종에 실린 논문 제목 8,818건을 수집해 텍스트 마이닝 분석을 수행했다. 시기는 팬데믹 이전(2017-2019)과 팬데믹 기간(2020-2022)으로 나누어 비교하였다. 분석 대상에는 기초의학, 내과, 외과, 예방의학, 조선의학, 조선약학이 포함되었고, 전체 제목 수는 팬데믹 이전 4,584건, 팬데믹 기간 4,234건이었다. 분석은 제목에서 핵심 명사를 추출한 뒤 질병 관련 용어와 보건의료서비스 관련 용어를 나누어 빈도를 비교했고, 단어들이 함께 나타나는 패턴을 바탕으로 잠재적 주제를 파악하기 위해 LDA 토픽모델링도 적용했다. 즉, 이번 분석은 북한 의학학술이 어떤 말을 더 자주 썼는지를 보는 동시에, 어떤 문제군이 연구의 묶음으로 유지되었는지를 함께 살펴본 작업이었다.
 

첫 번째 변화: 감염병 연구는 분명히 늘었고 코로나 관련 연구도 등장했다.

팬데믹 이후 북한 의학학술지의 제목에는 감염 관련 언어가 실제로 더 많이 등장했다. 질병 관련 상위 단어에서 팬데믹 이전에는 골절, 장애, 손상, 종양, 간염이 두드러졌지만, 팬데믹 기간에는 장애와 골절이 여전히 상위권을 유지하는 가운데 감염과 COVID-19가 눈에 띄게 부상했다. 이 변화는 특히 COVID-19 관련 제목 47건을 따로 분류했을 때 더 또렷하게 보였다. 관련 연구의 가장 큰 비중은 예방 및 공중보건 영역이었고, 그 다음은 치료와 증상·임상양상이었다. 반면 백신·면역학, 진단, 기초과학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매우 작았다. 북한의 팬데믹 관련 연구가 세계적 흐름처럼 백신 플랫폼이나 기초 생의학 연구로 크게 이동했다기보다, 통제와 예방, 그리고 임상적 관리의 수준에서 주로 전개되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 연구의 중심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 분석에서 더 중요하게 보이는 것은 새롭게 등장한 내용보다는, 크게 변화가 없는 연구의 주요 주제들이다. 보건의료서비스 범주에서 수술은 팬데믹 이전에도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팬데믹 기간에는 그 비중이 오히려 더 높아졌다. 주사, 약물, 경구약 역시 계속 상위권을 차지하였다. 토픽모델링에서도 팬데믹 이전의 가장 큰 주제는 수술적 치료와 재활관리였고, 팬데믹 기간에도 장애 관리, 외상과 감염 예방, 소아 외상과 회복 등 치료와 처치 중심의 묶음이 비슷한 비중으로 유지되었다.

이 점은 북한 의학학술이 외부 충격에 따라 유연하게 재편되는 체계라기보다, 오랜 기간 형성된 문제 해결 방식과 제도적 우선순위에 강하게 묶여 있음을 보여준다. 감염 관련 언어는 증가했지만 연구의 큰 관심은 여전히 수술과 약물치료, 그리고 즉각적 임상 문제 해결에 보다 가까웠다. 다시 말해 팬데믹은 북한 의학연구에 새로운 어휘를 더했지만, 이렇다할 변화를 만들지는 못했다.

 

 

왜 큰 변화가 없었을까

우리의 연구는 이 패턴을 북한 보건의료체계의 구조적 제약과 연결해 해석한다. 우선 만성질환 관련 연구가 팬데믹 전후 모두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북한이 장기적 관리와 첨단 진단, 안정적인 약제 공급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는 의료환경에 놓여 있음을 시사한다. 고가 장비와 의약품, 장기 치료체계가 제한된 상황에서 실제 수행 가능한 연구는 비교적 즉각적인 처치와 치료 중심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해석은 팬데믹 대응 자체의 성격과 관련된다. 북한은 오랫동안 스스로를 'COVID-free' 국가로 주장했고, 방역에서도 과학기술 경쟁보다 통제와 위생, 격리, 증상관리 쪽을 더 강조해 왔다. 여기에 경제 제재와 자원 부족이 겹치면서 백신 개발이나 기초과학 같은 자본집약적 연구를 확대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팬데믹기 연구가 예방·공중보건과 임상관리 쪽에 치우친 것은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재 상황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외상과 수술 관련 연구의 지속성도 가볍게 볼 수 없다. 골절, 손상, 수술 같은 단어가 높은 비중을 유지했다는 사실은 민간 의료수요뿐 아니라 군사의학과 상시적 긴장 상태라는 북한 특수성과도 맞닿아 있을 수 있다. 아울러 최근 북한이 중앙급 병원과 원격의료 등 치료 인프라를 강조해 온 정책 흐름 역시 치료지향적 연구의 지속성과 연결해 볼 여지가 있다.

 

결론

팬데믹은 북한 의학연구를 바꾸었는가. 우리의 대답은 '부분적으로는 그렇지만, 근본적으로는 아니었다'에 가깝다. 팬데믹이라는 세계사적 충격에도 연구의 중심축이 크게 이동하지 않았다는 것은 새로운 위기해결 방식을 도모하기보다 과거에 해왔던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이번 분석은 북한 의학학술의 내용 그 자체를 넘어, 북한 보건의료체계가 어떠한 방향으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 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창을 제공한다. 그러나 최근 김정은의 발언이나 소위 ‘보건혁명’의 내용을 볼 때 그동안의 관성적인 태도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이는 것도 사실이며 앞으로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최고지도자의 극복의지가 실제 현장에까지 미치는지 지켜 볼 필요가 있다.

 

※ 본 연구는 대한의학회 공식학술지인 "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에 아래 제목으로 2026년 8월에 게재될 예정이다.
"Consistency in North Korean Medical Academic Research Topics during the COVID-19 Pandemic: A Text Mining Analy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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